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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 변영주, 작곡가·프로듀서 방시혁을 만나다 -


1967년,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지미 헨드릭스의 첫 등장을 지켜본 에릭 버든(애니멀스)은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구나. 비록 저 멀리 베트남에서는 폭탄이 터지고 있지만.” 그런 시대가 있었다. 자고 나면 새로운 파이오니어들이 나타나 대중음악을 쉼없이 혁신하던 시절. 이제는 아니다. 트렌트 레즈너(나인 인치 네일스)가 “누군가 내 이마에 총을 겨누고 최근 5년간 새롭게 등장한 뮤지션 중 괜찮았던 녀석 다섯만 대라고 하면 내 머리통은 박살날 것이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때로부터도 이미 10여년이 흘렀다.

동시대의 조류를 비판하기란 손쉬운 일이다. 그러나 트렌드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도외시한 비판은 어쩌면 게으른 처사일지 모른다. 상업주의 혹은 답습이라는 이름으로 간편하게 꼬리표를 붙이고 말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주류 문화계의 외연을 확장하여 마침내 비주류까지 포용해낼 수 있을 것인지, 나아가 앞선 세대의 유산과 지혜를 후배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지에 대해 문화 생산자로서의 고민을 품고 있는 변영주 감독이, 그 힌트를 모색하고자 당대 최고 히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방시혁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변영주: 2AM의 <죽어도 못 보내>를 들으면서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가사를 보면 찌질한 남자의 이야기잖아요. 조금 더 나아가면 범죄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웃음) 하지만 이 노래를 2AM이 불렀기 때문에 호소력을 가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죽어도 못 보내>를 작곡할 때는 2AM이라는, 잘 알려진 그룹의 이미지까지 고려해서 곡과 가사를 안배하시지 않았나 싶은데요.

방시혁: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사실 2AM의 전작인 <이 노래>도 좋은 곡이긴 하지만 멤버들의 나이대에 어울리는 노래는 아니었죠. 그래서 그들을 위해 곡을 만들기 전에 2AM이라는 그룹이 가지고 있는 시장에서의 위치라든가 방송에서의 이미지들을 놓고 오랫동안 분석하고 연구했어요. 그러다가 나온 게 ‘죽어도 못 보내’라는 가사였고요. 그때가 지난해 추석이었는데 부모님 집에 갔다가 친구들이랑 밤새도록 술 마시느라 결국 차례도 못 지냈거든요. (웃음) 그렇게 술 마시던 중에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라는 가사가 주루룩 떠오른 거죠. 그런 다음 멤버 하나하나에게 각자 맞는 가사와 역할을 부여한 거고요.

변영주: 어떻게 보면 작곡가보다는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이 더 메인이었던 셈인가요.

방시혁: 맞아요. 프로듀서 방시혁이 지시를 내리면 작곡가 방시혁은 그에 따라 멜로디와 가사를 쓰는 거죠. 백지영씨의 <총 맞은 것처럼>도 마찬가지예요. 무엇보다 그녀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이 최우선이었으니까요.

표절은, 창작자의 영혼에 달린 문제



변영주: 애초 저는 독립영화를 하다가 충무로에 들어와서 손톱만한 성공과 손바닥만한 실패를 경험한 뒤(웃음)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그렇게 다를까?’라는 화두로 고민한 세월이 몇년간 있었어요. 그러다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소설이나 음악처럼 다른 영역에서 대중을 만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어떻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대중의 요구에서 균형점을 찾고, 산업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죠. <죽어도 못 보내>라는 미니 앨범을 들으면서 느낀 것도 그거예요. ‘이 사람은 그 긴장을 즐기나?’

방시혁: 저는 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렸을 때 학급에 보면 그런 애들 있잖아요. 다리 한쪽은 날라리에 걸쳐 있고 한쪽은 모범생에 걸쳐 있는. 20대에 대중음악계에 들어와서도 그랬어요.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하고 싶어 하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미국의 대중음악을 주로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쟤는 외국에서 살다온 애야?’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요. 이제는 또 상업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제작자이면서 한편으로는 또 지식인으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동경하고 있죠. 그렇게 항상 중간자의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요. 문제는 그렇게 다른 욕구들이 평행하게만 유지되는 게 또 아니더라는 거예요. 특히 지식인의 위치에서 무언가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과 상업적인 제작자로서 성공하려는 욕망 사이에는 충돌이 일어날 때가 많아요. ‘대중의 욕망과 내 욕망의 긴장은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좀 치졸한 것 같아서 싫긴 해도, 항상 같은 답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쩜 그렇게 자로 잰 듯 당대의 요구에 따른 노래와 가사가 아니면 안 받아들여주시는 지 모르겠어요. (웃음) 사실 1위 곡을 썼으면 한번 정도는 10위를 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요. 그런데 1위를 하고 그 다음에 50위를 하게 되면 그것 하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다음에 나오기로 했던 음반들도 못 나오게 되는 거예요. 욕망을 조율하기에는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변영주: 노래로 대중을 만나는 것 외에도 블로그라든가 SNS를 통해서 본인의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시는데요. 그렇게 대중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건 두렵지는 않으세요?

방시혁: 두렵지는 않아요. 제가 천성적으로 오지랖이 넓은데다(웃음) 때려죽여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쪽이라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궁극적으로 그거예요. 모두 제자리를 찾아주자는 것.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들 똑같은 이야기만 해요. ‘아이돌 일색의 차트가 문제야’라고. 하지만 그 지점을 하나하나 따져서 공과 과를 따지는 노력은 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사실 아이돌 덕분에 사람들이 음악을 더 소비하고 열심히 듣게 된 측면이 분명히 있어요. 과거에는 그냥 오며가며 노래 듣고 가사 외워서 노래방에서 부르는 게 음악을 소비하는 형태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대중이 아이돌을 사랑하게 되면서 노래 또한 그들의 일부분으로서 애착을 가지게 된 거죠. 그리고 사실 한국의 차트에 오른 음악들은 빌보드와 비교해봐도 천편일률적이지 않아요. 오히려 매우 다이내믹한 편이죠. 표절문제도 그래요. 전문적이지 않은 평가와 진단들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그런 논란들은 끊임없이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고요. 비판은 많지만 실제로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인식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는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거죠.

변영주: 말씀하신 대로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표절시비인데요. 그 기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방시혁: 얼마 전에 배철수씨가 하신 말씀에 원론적으로 동의해요. 창작자의 영혼에 달린 문제죠. 사실 표절여부는 당사자가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누구도 가려낼 수 없어요. 거기에 또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몇 마디가 같으면 안돼’라는 식으로 재단하는 것도 옳지 않고요. 8마디가 똑같은 전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요. 본인이 아니면 진실을 모르는 문제이니만큼 아티스트들의 도덕적 기준을 높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변영주: 누군가가 저에게 지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 음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어린 나이에 너무 냉소적인 음악을 하는 게 더 걱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팬으로서의 우려인데, 저는 지드래곤이 좀더 ‘핫’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방시혁: 지드래곤이 냉소적이라면, 어린 나이에 대중의 욕구를 너무 잘 안다는 뜻일까요?

변영주: 아니요. 저는 <소년이여>나 <코리안 드림>의 가사처럼 ‘너희들이 날 싫어하는 거 알겠지만 내 스타일대로 가겠어’라는 태도가 냉소적으로 보인다는 거죠. 사실 좀더 억울해해도 좋을 것 같은데. (웃음)

방시혁: 사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미 15년쯤 전에 미국의 흑인들이 정립한 거예요.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한국의 인디 신에서 숙성된 다음 이제 메이저에서도 받아들여진 셈이죠. 그래서 그런 화법을 마이클 잭슨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했던 것처럼 ‘지드래곤이 억울했나보구나’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쿨한 남자, 냉소, 섹스의 코드가 상업적인 음악의 표현 형태로서 당대에 받아들여진 거죠.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조금 다른 부분이에요. 예전에 칼럼에도 썼듯이 ‘지드래곤은 진짜 천재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솔로 음반을 너무 급히 내게 된 것 같아 답답했어요. 빅뱅 앨범 3장을 만들고 바로 솔로 앨범을 낸 거잖아요. 저만 해도 1년 동안 쓰는 곡이 몇곡 안되는데, 이 친구는 몇 십곡을 쓴 거예요. 그렇게 아이디어가 고갈된 상태라면 당대의 트렌드를 답습하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사실 지드래곤은 그런 음악을 하지 않아도 <거짓말>처럼 당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코드의 음악을 해도 성공할 에너지가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못하죠. 이미 상업적으로 완숙해져서 어떤 코드들을 제 색깔과 섞어서 대중이 듣기 좋게 만드는 능력은 있어도 그만한 에너지는 없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지드래곤의 솔로 앨범은 과거 <거짓말>처럼 ‘허억, 어떻게 이런 걸 했지?’라는 느낌이 아니라는 거죠. 능력이 있는 친구인데, 솔로 앨범에 좀더 공을 들일 수 있도록 왜 시간적으로 배려해주지 못했나는 점이 정말 아쉽죠.

신인 작곡가 위한 기회 줄고 있어



변영주: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몇년마다 다시 보게 되는 작품이 있어요. 제 경우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들이라든가 <대부> <졸업> 같은 작품을 때때로 다시 보면서 왜 제가 영화감독이 되려 했던가를 다시 떠올리거든요. 작곡가 방시혁을 있게 한 음악들은 어떤 노래들이었을까요?

방시혁: 제가 어렸을 때 큰 감명을 받고 지금까지도 2년에 한번씩 듣게 되는 음악들은 레드 제플린 같은 60년대 하드록이에요. 어린 시절에 레드 제플린의 <Since I’ve Been Loving You>를 듣고는 정말 무언가가 다 무너져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그 때문에 기타도 배우고 그랬는데 사실 그 음악들이 작곡을 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어요.

변영주: 영향을 받는다는 건 스타일을 좇는다기보다 태도를 배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로 치자면 ‘감독은 아마 이런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찍었을 거야’라고 상상하는 식으로.

방시혁: 사실 저는 록 계열은 많이 듣지도 않거든요. 그럼에도 60년대 하드록에는 강한 향수가 있어요. 한국 음악 중에서는 유재하씨의 모든 노래들을 정말 사랑했고요. 어릴 때부터 외국 음악만 듣고 자라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은 잘 모르는데, 유재하씨 음반 나오던 그 무렵 1년 반 동안은 <어떤 날> 같은 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변영주: 또 유재하 가요제로 음악계에 데뷔하셨잖아요.

방시혁: 제 이력만 보고 뭔가 화려한 스토리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실은 전혀 안 그래요. 유재하 가요제도 사실 처음에는 안 나가려 했었어요. 저는 상업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요제 성격과 맞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동상을 주니까 또 서운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당시에 상 받으러 나가면서 다들 기뻐하는데 혼자 인상 쓰고 있었대요. 어쨌든 그렇게 커리어가 시작되었는데 몇년간은 개점휴업 상태였죠. 그러다 우연히 박진영씨의 눈에 들어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때도 사실 시큰둥하게 반응했어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이래야 마땅한데 “생각 좀 해보고요” 그랬으니. (웃음) 어쨌든 그렇게 JYP에서 일하면서 작곡가·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까 이야기한 상업성에 대한 고민은 크게 안 해도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클라이언트인 박진영씨의 요구에만 부응하면 되었고, 박진영씨의 요구는 “한국에서 제일 ‘뽀대’나는 걸로!”였으니까요. (웃음)

변영주: 그 사이에 음악시장 환경도 크게 바뀌었잖아요. 앨범 단위로 프로듀스할 때와 싱글 한곡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작업에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방시혁: 일단 시장이 그렇게 변한 것 자체는 바람직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정말 강매에 가까운 형태로 음악을 팔았잖아요. 달랑 한곡 들으려고 비싼 앨범을 사야 했으니까. 미리 서너곡을 듣고 충분히 검증한 다음 정규 음반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싱글 제도는 그런 점에서 장점이 있다고 봐요. 개별 곡 작업에서 크게 달라진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예전에 음반 만들 때는 곡과 곡 사이의 공백을 몇초로 하느냐, 곡이 끝날 때 페이드 아웃은 어떤 형태로 가느냐도 정말 중요했거든요. 곡 순서 배치는 물론이고요.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음반을 그대로 재생하지 않잖아요. 앨범을 사도 mp3로 추출해서 들으니까, 그런 프로세스들이 의미가 없죠. 산업적으로 보자면 그런 측면도 있어요. 앨범 단위로 음악을 만들 때는 모든 곡들을 일류 작곡가에게 맡길 수가 없었잖아요. 너무 비싸니까. 그래서 한두곡을 인기 작곡가에게 받고 나머지는 가능성있는 신인 작곡가들에게 기회를 줬어요. 업계에서는 ‘깔 곡’이라고 부르는데, 싱글이 일반화하면서 깔 곡의 입지가 줄어들고 신인 작곡가들이 데뷔할 기회도 같이 줄어들게 되니, 아무래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 측면이 있죠.

산업 자체가 ‘핫’ 해져야 수익모델 개발도



변영주: 7~8년 전쯤 베를린영화제에 갔다가 거기서 고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요. 놀라웠던 건 제가 한국 사람인데도 외국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그 영화를 낯설어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말하자면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는 거죠. ‘왜 우리는 그분들의 지혜를 배우지 못했을까?’라는.

방시혁: 음악쪽은 더 심한 것 같아요. 이식 문화론이 철저히 맞아떨어지는 구조랄까요. 그리고 영화계는 분명 어떤 세대만큼은 스스로 독창적인 영역을 개척해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음악은 철저하리만치 세대가 단절되었고 흥행을 위해 미국산 음악과 스타일을 수입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변영주 : 그래도 지금 시점에서 글로벌하게 당대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건 한국의 대중음악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방시혁 : 그랬던 시기가 과거에 또 있었죠. 신중현씨가 등장했던 때. 그분은 완전히 당대의 음악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산울림도요. 우위를 매길 수는 없겠지만 그분들의 음악은 정말 달랐다는 느낌을 주었어요.

변영주: 그때의 당대성은 그분들에 국한된 거였잖아요. 지금은 전체 음악산업이 글로벌해졌다는 느낌인데요.

방시혁: 그 부분은 저도 느껴요. 불과 얼마 전까지는 제가 쓴 곡들이 차트 1위에는 올라도 국민적인 호응을 받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총 맞은 것처럼> 이후 한국에서 가장 ‘핫’한 작곡가처럼 되었는데, 이 변화도 그런 부분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어릴 때부터 저는 항상 똑같은 음악을 해온 셈이거든요. 당대의 미국 음악. 그게 과거에는 낯설었어도 스타일리시해서 호응을 얻었다면, 지금은 대중도 완전히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놀라우리만치 세계와 똑같은 수준으로 가고 있어요.

변영주: 그렇죠. 언젠가는 이 시기의 한국 음악이 진정 글로벌했던 순간으로 평가받는 때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mp3 불법 다운로드로 바닥을 쳤던 음악시장이 극적으로 비약에 성공했다는 느낌도 있고요.

방시혁: 비약에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배가 고파요. (웃음) 물론 저도 외부에 강연을 나가면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요. 바닥을 쳤고, 변화의 방향타가 긍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고요. 하지만 산업적인 부분들을 돌아보면 답이 참 안 나와요. 말씀드린 것처럼 상업적인 요구와 개인적인 욕망의 경계에서 과감히 개인을 버리고 요구에 부응한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웃음) 활로가 잘 보이지 않아요. 어쨌든 긍정적인 징조들은 분명히 많아졌어요. 아이돌이라는 존재도 큰 역할을 했고요. 당장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산업 자체가 ‘핫’해지면 사람들은 그곳을 쳐다보게 되니까요. 그러다보면 수익에 관한 아이디어들도 차례로 생겨나겠죠.

변영주: 다시 ‘단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아메리칸 아이돌>을 보면 젊은 참가자들에게 배리 매닐로의 노래를 부르게 하거든요. 그런데 과연 <슈퍼스타 K>에서 송창식이나 사월과 오월, 유재하의 노래를 부르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이런 음들을 알고 있다는 뜻이구나’라는 것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이건 결국 영화계 후배들에게 어떻게 제가 체득한 지혜들을 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맞닿아 있는 부분인데요.

방시혁: 그와 관련된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나 감독님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걸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구체적인 작업들이 선행되어야겠죠.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하반기에는 케이블에서 제 이름을 건 토크쇼를 진행하려고 해요. 사실 전문적인 음악 프로그램들은 많지만 이렇게 뜨거운 감자를 건드리는 데는 없잖아요. <제리 스프링어 쇼>처럼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웃음)

변영주(1966년생)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대학원 졸업. 1993년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메가폰을 잡으며 영화계 데뷔. 이후 세편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2> <낮은 목소리3-숨결>과 두 편의 극영화 <밀애> <발레교습소>를 연출했으며 김동원 감독의 <송환>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했다. 현재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화차>의 크랭크인을 준비 중.

방시혁(1972년생)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1997년 제6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대중음악계에 데뷔했다. 이후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작곡가·프로듀서로 활동하였으며 2005년에 독립하여 자신의 회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주요 작품으로 god의 <하늘색 풍선>, 비의 <I do>,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내 귀에 캔디>,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2AM의 <죽어도 못 보내> 등이 있다.

(글) 조민준

(사진) 오계옥 klara@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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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우리말

정보들 2010.02.27 18:49

미르 : 용 의 순수 우리말

푸르미르 - 청룡의 순수 우리말

미리내 : 은하수 의 우리말

커리쉴하프 : 마을수장의 전쟁도구장비들

 
온새미로 :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마루 : 하늘의 우리말

 

해류뭄해리 : 가뭄후에 오는 시원한빗줄기.

 

그린비 : 그리운 남자라는뜻의 우리말

그린내 : 연인의 우리말

아라 : 바다의 우리말

그린나래 :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

예그리나 : 사랑하는 우리사이

비나리 : '축복의 말'의 우리말

한울 : 우주

 

나린 : 하늘이 내린

아리아 : 요정의 우리말

수피아: 숲의 요정

푸실 : 풀이 우거진 마을

달보드레하다 - 연하고 달콤하다

아토 : 선물

 

라온하제 : 즐거운 내일를 뜻하는 우리말  (라온 : '즐거운' 이라는 순 우리말)

 라온제나 : 기쁜 우리

 라온힐조 : 즐거운 이른 아침 (힐조 : '이른 아침'의 순 우리말)



 

우리 말 중에 이렇게 이쁜 말들이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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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007

정보들 2009.10.18 01:00


피겨를 잘 모르는 나였고 관심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오늘 영상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우와 해버렸다.
절묘한 조화와 사람들의 기대 이상. 그리고 사람들의 걱정속에서도
열심히 잘해준 너무나 이쁜 연아.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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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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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1 / 21 / 31 일
던킨도너츠와 크라제 버거 50프로 할인
우와 강같은 소식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던킨..
이번달^^ 자주 먹을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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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E VISION

정보들 2009.09.2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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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의 많은 뮤지션들과 팬들이 그의 사망을 애도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에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의 팝 마니아들에게 유독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마이클 잭슨의 곡을 10곡만 추려 그에 대한 짤막한 에피소드를 공개한다(물론, 언급하지 않은 곡들 역시 훌륭한 넘버들이 많다. 단지 지면상의 이유로 소개하지 못함을 양해바란다.).

1. 비트 잇(Beat It)
한때 코미디 프로에서 ‘삐레~’라는 이름으로 젊은 친구들에게 알려지게 된 곡으로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한 마이클 잭슨의 넘버. 유명 록 밴드 밴 헤일런(Van Halen)의 기타리스트이자 피크 없이 손가락을 줄로 눌러 연주하는 ‘라이트핸드 태핑’ 주법의 창시자이기도 한 에디 밴 헤일런(Eddie Van Halen)이 돈 한푼 받지 않고 연주해 유명하다. “이 곡이 그렇게 뜰 줄 몰랐다”는 그는 현재 그것을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2. 빌리 진(Billie Jean)
마이클 잭슨의 기념비적인 곡으로 싱글 차트와 흑인음악 차트, 댄스 차트를 석권한 최초의 트랙이다. 곡에 등장하는 특유의 ‘헐떡거림’과 뮤직 비디오에서 보여준 화려한 댄스로 ‘스릴러(Thriller)’ 앨범의 히트 행진의 서막을 장식했던 곡이다.

3. 유어 낫 얼론(You're Not Alone)
싱글 발표 후 빌보드 차트에 1위로 데뷔하며 빌보드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남긴 곡으로 1995년 그의 베스트 앨범 ‘히스토리(History)’에 실린 신곡이다. 당시의 뮤직비디오 역시 꽤나 화제를 모았었는데, 이 비디오에는 1994년 그와 결혼한 리사 마리 프레슬리가 마이클 잭슨과 함께 누드에 가까운 의상으로 등장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전설의 로큰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 커플은 19개월만에 이혼하는 아픔을 겪는다.

4.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가수 밥 겔도프(Bob Geldof)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구호 운동을 위해 미국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였던 ‘유 에스 에이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당시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너무나 유명했다. 이 타이틀 곡은 마이클 잭슨과 또 한명의 걸출한 흑인 가수이자 작곡가로 우리에게 ‘헬로(Hello)’와 영화 ‘백야’의 주제곡 ‘세이 유, 세이 미(Say You, Say Me)’의 주인공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공동작곡한 곡이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마돈나(Madonna), 티나 터너(Tina Turner) 등 당대 최고의 모든 할리우드 스타들이 곡에 참여하며 아프리카에 대한 구호 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한편 정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 앨범 이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며 실질적으로 구호 운동에 쓰인 수익금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뒷이야기가 흘러 나오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5.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
마이클 잭슨의 첫 주연영화인 동시에 음악 영화이기도 한 1988년 개봉작 ‘문워커’의 주제곡으로 당시 영화는 한국에서도 소개되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각종 특수효과가 동반된 이 영화의 주제는 마이클 잭슨이 지구를 지키는 용사가 되어 어린이들을 구하고 적들을 물리친다는 다소 유치한(?) 설정이었지만, 그의 팬들에게는 그보다 더한 선물이 없었다.

6. 휴먼 네이처(Human Nature)
1982년 앨범 ‘스릴러(Thriller)’의 수록곡 중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넘버 중 하나. 비록 빌보드 싱글 차트는 7위가 최종 성적이었지만 분위기 있는 발라드 성향의 넘버로 감미로운 멜로디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딱 맞아 떨어지는 곡이었다. 이후 ‘빌리 진(Billie Jean)’, 비트 잇(Beat It)’ 만큼 국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주 리퀘스트됐다.

7. 블랙 오어 화이트(Black Or White)
1982년에는 로커 에디 밴 헤일런을 대동하고 레코딩에 임했던 그가 1991년 당대 최고의 록 밴드였던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출신으로 현재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의 기타리스트인 슬래시(Slash)와 녹음을 진행한 곡. 음악을 시끄럽게 튼다고 타박하는 아버지와 그에 반항하는 아들의 설정이 인트로의 내용에 들어가 재미를 더하는 넘버였다.

8. 힐 더 월드(Heal The World)
해외에서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내용을 참으로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이클 잭슨의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넘버. 곡이 발매됐었던 1991년에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로 대표되는 기아와 전쟁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속출했던 유니세프와 같은 기관들, 그리고 오드리 헵번과 같은 유명 인사들이 구호 활동을 펼치기도 했는데, 마이클 잭슨의 ‘힐 더 월드(Heal The World)’ 역시 그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의 곡이다.

9. 아일 비 데어(I'll Be There)
한국서는 머라이어 캐리의 곡으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을 정도지만 웬만큼 나이가 있다면 이 곡이 11세의 마이클 잭슨이 부른 것이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잭슨 파이브(Jackson 5) 시절 불렀던 이 곡은 당시 어린 나이의 그가 얇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곡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의 완벽한 흑인적 가창을 선보이고 있다.

10. 벤(Ben)
인종차별의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던 1970년 당시의 흑인 가수들이 할리우드 영화의 주제곡을 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14세의 마이클 잭슨은 멋지게 해 냈다. 부른 다수의 쥐가 등장하는 공포영화 ‘벤(Ben)’의 주제곡이지만 달콤한 멜로디 덕분에 한국에서는 잭슨 파이브 시절의 마이클 잭슨이 어릴 적 불렀던 곡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릴 적의 그가 어떻게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 ‘모타운(Motown)’을 대표하는 싱어가 될 수 있었는지는 이 곡이 명확히 증명한다. 국내의 올드 팝 마니아들이 특히 좋아하는 곡.

한편, 1970년대 미국의 인기 TV시리즈 '미녀 삼총사'의 섹시스타 파라 포셋도 잭슨과 같은 25일 항문암으로 62세의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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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마켓은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장터이지만 프리마켓은 창작품과 창작행위가 펼쳐지는 한 낮의 파티다. 패션 피플이 주체가 되는 프리마켓은 컬처와 쇼핑이 공존한다. 때로는 셀러가 되고 때로는 바이어가 되어사교의 장을 펼쳐나가는 7개의 예술시장.

블링 벼룩시장
클럽 컬처 매거진 <블링>의 벼룩시장으로 2008년 5월부터 격월로 열리고 있다. 가을까지는 한강변에 있는 사옥 정원에서 마켓을 열었으나 11월부터는 쌀쌀한 날씨 탓에 홍대의 힙한 카페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데이 파티’라는 콘셉트답게 <블링> 에디터들이 초청한 영화감독, 디자이너, 클럽 디제이 등의 아티스트들이 흥겨운 플리마켓을 여는데, 슈즈 마니아인 영화감독 이사강의 컬러플한 1만원대 하이힐이 베스트 셀링 아이템으로 손꼽힌다. 턴테이블에서는 디제이의 음악이 깔리고 시원한 맥주와 간식이 테이블 곳곳에 차려져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블링 플리마켓은 특히 빈티지에 애착이 강하다. 그래서 낡고 해지고 촌스러운 것은 남이 쓰다 버린 중고라는 개념보다 소장 가치가 있는 멋스러운 빈티지로 다가온다.

LOCATION <블링> 잡지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 DATE 2009년 1월 31일 TIME 14:00~19:00 WEB thebling.egloos.com

INFORMATION FOR SELLER
일반인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경로는 쉽지 않으나 <블링> 편집장, 기자들의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을 통해 신청한 셀러는 최대한 수용하는 편이다. 제품 선택은 전적으로 셀러의 마음이며 시장에 제약도 없다. 주의할 점은 가격인데 제품의 원가와는 상관없이 최대한 저렴하게 판매해야 한다. 자리 선택은 선착순이다.
        

선데이 플리마켓
일요일 낮, 한산한 학동사거리를 지나 복합문화 공간인 데일리 프로젝트에 들어서면 뻥 뚫린 천장을 통해 하늘과 맞닿은 작은 정원과 그곳을 가득 메운 패션피플을 만나게 된다. 2007년 7월부터 시작한 선데이 플리마켓은 평균 20여 팀이 참가하는데 일반인은 물론이고 음악, 미술을 공부하는 예술학도와 디자이너 그리고 모델까지, 미디어에서나 봤을 법한 패션피플과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된다. 디자이너가 셀러가 되어 직접 자신의 작품을 팔고 잘나가는모델들이 바이어가 되어 방문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브랜드 제품보다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와 희소성 있는 빈티지 의류, 직접 리폼한 소품 등 크리에이티브한 제품이 많다. 제품 회전율도 굉장히 빨라 맘에 드는 물건은 일단 사고 보는 게 남는 장사다.

LOCATION 학동사거리에서 강남구청 방향 데일리 프로젝트 내 DATE 매달 첫째・셋째 주 일요일(2월 한 달간 동절기 휴무) TIME 12:00~18:00 TEL 02-3218-4064 WEB blog.naver.com/dailyproject

INFORMATION FOR SELLER
홈페이지에 공지된 신청 양식에 따라 이메일로 접수하며 선착순 마감한다. 이미테이션 제품은 판매할 수 없으며 판매 제품도 30피스 이하로 제한한다. 참가비 1만원은 전액 국제연합아동기금에 기부된다.
        

애나스바자
패션 칼럼니스트 한영아가 운영하는 위탁 판매 숍이다. 애나스바자는 리사이클의 개념으로 순수하게 접근해야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대표 패션 거리인 멜로즈 애비뉴의 상점처럼 말이다. 중고품과 부티크상점, 이국적인 골동품점, 아방가르드한 화랑이 가득 찬 멜로즈 애비뉴에서는 낡은 스타일의 옷을 재활용하는 빈티지 룩이 늘 패션을 선도한다. 뉴욕 22번가와 23번가 사이의 6번 애비뉴에 있는 앤티크 벼룩시장이나 런던 포토벨로의 앤티크 벼룩시장을 연상해도 좋겠다. 입지 않는 옷을 재활용하자는 취지로 입소문을 탄 곳이니 만큼 빈티지한 명품이나 새것 같은 중고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찾았다간 십중팔구 실망하기 쉽다. 고이 간직해두었던 할머니의 스카프, 리폼을 위해 구입하려는 가방, 버리기는 아깝지만 입을 수는 있는 옷 등을 1~5만원대에 사겠다고 마음먹은 뒤 방문하는 게 좋다.

LOCATION 압구정 현대고등학교에서 가로수길 방향으로 들어가 첫번째 골목에서 좌회전 후 30m 직진 TIME 12:00~20:00(매주 일요일 휴무) TEL 02-3445-3738 WEB cafe.naver.com/annasbazar

INFORMATION FOR SELLER
판매로 수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셀러는 홈페이지 단골 회원에게 제품을 수시로 위탁받는다. 가격을 직접 매길 수는 있으나 대다수의 셀러가 사장 한영아씨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편. 셀러가 직접 가격을 책정했을 경우라도 터무니없는 가격인 경우에는 한영아씨가 가격을 조정한다. 위탁 제품은 특별히 돌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석달 후 교회 등에 기증하며 셀러는 판매 금액의 50%를 돌려받는다.
        

세컨드호텔 개러지 세일
Art&Craft 숍 세컨드호텔이 주관하는 개러지 세일은 흡사 대낮에 열리는 파티와 같다. 한쪽에서는 디제이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디제잉을 하고 어떤 이는 맥주를 마시고 또 어떤 이는 자전거를 타고 묘기를 부린다. 장터에 나온 물건도 유쾌하다. 직접 구운 컵케이크를 늘어놓고 혹시나 망가질까봐 조마조마하는 셀러도 있다.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로 구성된 셀러들이 옷장 속 잠든 아이템과 아트워크한 작품, 직접 디자인한 옷, 세컨드호텔에서 퇴장한 몇 개의 아이템을 가지고 판을 벌이며 일반인은 셀러로 참가할 수 없다. 아끼던 탱탱 봉이 예상외로 많이 팔려 곤란해하는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는 곳. 해가 지면 급한 마음에 되레 마구 줘버리는 유쾌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LOCATION 압구정 도산공원 근처 투래빗 주차장 DATE 한두 달에 한 번 열리며 360사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한다.(2월까지 동절기 휴무) TEL 02-542-2229, WEB www.360sounds.net

노리마켓
아트디렉터 박희정을 주축으로 그녀의 친한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작한 노리마켓. 셀러는 모델, 멀티숍 오너나 스타일리스트로 모두 패션에 죽고 못 사는 쇼퍼홀릭이며 일반인은 셀러로 참가할 수 없다. 스타일시한 패션피플은 새 옷과 빈티지를 적절히 믹스해 입지 않던가. 이곳에서는 손이 많이 가 부들부들해진 프라다 백처럼 빈티지한 명품들도 눈에 띈다. 자신이 수집한 물건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해 희소성이 있는 물건은 아예 비싸게 내놓기도 하는 곳.

LOCATION 압구정 도산공원 근처 레스토랑 온프라이데이 앞 주차장 DATE 매주 일요일 TIME 14:00~18:00 TEL 02-541-5809
        

세컨드 세터데이
상수역 앞 젊은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인 달링 스튜디오에서 주최하는 플리마켓으로 일러스트레이터 박진영씨 기획으로 2008년 6월 첫선을 보였다. 학생이나 아마추어 예술인이 주로 참여하며 그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구입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의류보다는 음반, 만화책, 인테리어 소품 등이 주를 이루며 직접 만든 쿠키나 음료를 가지고 나온 셀러도 눈에 띈다. 캐리커처를 단돈 2000원에 그려주는 미술가와 통기타 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스트리트 밴드가 흥을 돋우는 곳.

LOCATION 지하철 6호선 상수역 4번 출구에서 뒤로 돌아 삼성정육점 맞은편 DATE 매주 둘째 주 토요일(2월까지 동절기 휴무) TIME 15:00~10:00 WEB club.cyworld.com/2nd-sat

INFORMATION FOR SELLER
신청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참가 신청서 양식에 의해 이메일로 받으며 최대 30팀으로 제한한다. 참가비는 5000원인데 다음번 플리마켓 진행비로 사용된다. 돗자리나 행어 등을 가져올 것.

2009.01.12 11:12 입력 / 2009.01.29 16:58 수정
EDITOR 안은주 PHOTOGRAPHER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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